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유치원/지역별 현황 (문단 편집) === [[제주시]] === [[1924년]] 지금의 [[제주시]] [[일도동|일도이동]]에 성내교회 부설로 설립된 중앙유치원이 최초이다. 제주도가 [[전라남도]] [[제주도(일제강점기)|제주도]]였던 시절에 세워졌으며, 제주도 최초의 유치원이자 제주도에서 가장 오래된 유치원이다.[* 게다가 [[제주특별자치도]]보다 유치원이 늦게 들어온 광역자치단체도 2곳이나 있다. [[울산광역시]](1930년), [[세종특별자치시]](1970년)가 그 주인공이다. 심지어 [[청주시]], [[수원시]]보다도 빠르다. 제주도는 1924년, 청주시는 1929년, 수원시는 1928년에 유치원이 들어왔으니 이건 맞는 말이다. 다만, [[1946년]]부터 [[1997년]] 6월까지 제주도는 유치원이 가장 늦게 들어온 광역자치단체였다.] 구제주에 있으며, 정확한 소재지는 제주시 일도2동[* 당시 [[전라남도]] [[제주도(일제강점기)|제주도]] 제주면. 제주면은 1931년에 제주읍으로, 1955년에는 [[제주시]]로 승격됐다. 이 때문에 제주도에 오래 사신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제주시(의 동 지역)를 이를 때 ‘시’라고만 부른다고 한다.]이다. [[1918년]]~[[1920년]]생이 첫 원생이었는데, 첫 번째 졸업생들은 대부분 사망했고, 살아 있더라도 [age(1918-12-31)]~[age(1918-01-01)]세이다. 중앙유치원은 현재 역사가 [age(1924-01-01)]주년이나 되었다. 당시 원생들은 지금의 제주시 [[일도동|일도일동, 일도이동]], [[건입동]], [[이도동(제주시)|이도일동, 이도이동]], [[용담동]], [[삼도동|삼도일동, 삼도이동]], [[오라동|오라일동, 오라이동, 오라삼동]]에 살았고 거의 대부분이 외국어 수준으로 매우 심한 [[제주어]]를 사용했다.[* 현재도 일부 제주도 유치원생이 [[제주어]]를 사용하기는 하지만, 그 시절의 유치원생보다는 강도가 많이 약해졌다. 거의 몇몇 단어들만 제주어 표현을 사용하는 수준.] 한편, [[애월읍]] 정도를 제외하면 [[제주시]]에서도 시골인 지역이 제법 남아 있는 옛 [[북제주군]] 지역[* [[애월읍]], [[한림읍]], [[한경면]], [[추자면]], [[구좌읍]], [[조천읍]], [[우도면]].]에는 중앙유치원을 설립한 지 55년이 지난 1979년에야 유치원이 설립됐다. 그 전에는 북제주군 지역에 살던 아이들이 제주시의 유치원으로, 신제주에 살던 아이들이 구제주의 유치원으로 원정 통학을 했는데, 주로 [[애월읍]][* 인구 3만 6,333명으로 제주시의 읍면 가운데는 인구가 가장 많지만 (심지어 일도2동보다도 많다.) 이상하게 사립유치원은 없다. ‘애월’이라는 이름은 1935년 [[전라남도]] 제주도 신우면이 면 소재지 이름을 따서 개칭하면서 생겼다.]이나 [[조천읍]][* 인구 2만 4,937명으로 제주시의 읍면 중에서는 애월읍 다음으로 인구가 많은 읍인데도 사립유치원은 없다. ‘조천’이라는 이름은 1935년 전라남도 제주도 신좌면이 면 소재지 이름을 따서 개칭하면서 생겼다. 다만, 조천읍 동부는 그 지역의 가장 큰 마을인 함덕리에서 따 온 '함덕'이라고 많이 부르는 편.]에 살던 아이들이 그렇게 원정 통학을 했고[* 특히 [[애월읍]] 하귀리, 광령리와 [[조천읍]] 신촌리, 대흘리, 와흘리, 교래리는 아예 '''[[제주시]] 시내와 붙어 있다.'''], [[구좌읍]][* [[별방진]]이 있는 그 곳이며, 인구는 1만 5,554명이다. 현지인들은 이 곳을 주로 ‘세화’라고 부르며 (구좌읍 서부는 그 지역에서 가장 큰 마을인 김녕리에서 유래한 '김녕'이라고 부른다.), 유치원은 [[1980년대]]에 들어왔다.], [[한림읍]][* [[한림공원]]이 있는 그 곳이다. 1935년 이전에는 구우면이었으나 개칭됐고, 1956년에 한경면을 분리했다. 흔히 한림이라고 하면 한림읍 한림리 일대를 뜻하며, 협재리 일대는 '협재'라고도 많이 불린다. 유치원은 1970년대에 들어왔으나, 인구가 2만 1,365명으로 늘면서 유치원도 많이 들어와 2019년 현재는 사립유치원이 있다.], [[한경면]][* 제주현대미술관이 있는 그 곳이며, 제주도 내에서도 상당히 시골이라 인구도 9,045명밖에 안 되고, 유치원도 늦게 들어왔다. 한경면 주민들은 자녀를 사립유치원을 보내고 싶으면 한림읍까지 가야 한다.], [[추자면]][* 제주시에서도 상태가 가장 열악한 곳이며, 인구도 1,729명으로 가장 적다. 또한 제주시와는 배편으로만 연결되고, 유치원은 1980년대 이후에 들어왔다. 참고로 축구선수 [[지동원]]이 이 곳에서 태어났다.], [[우도면]][* 과거 구좌읍이었다가 별도로 분리됐다. 인구는 1,843명으로 추자면보다는 많고, 유치원은 1980년대 이후에야 들어왔다.]은 제주시와의 거리가 멀고 제주 시내로 향하는 교통편이 부실해서 원정 통학을 하는 수가 많지 않았다. 제주도에는 철도가 없는[*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일제강점기]]에 [[제주도순환궤도]]가 있었지만 얼마 못 가서 폐선됐다.] 탓에 당시 원정 통학을 하던 아이들은 모두 버스를 타고 갔다고 한다.[* 제주도를 여행하다 보면 도내 차량들 대부분이 ‘하’, ‘허’, ‘호’를 달고 있는데, ‘하허호’ 번호판이 아닌 차량들은 거의 버스나 지역 주민의 차량이다.] 1970년대 후반~1980년대 초반이면 전국에 공립유치원 열풍이 불던 시기였다.[* 참고로 이 시절이면 [[한석원]]과 [[한석만]]이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이다. 한석원과 한석만이 유치원을 다녔다면 한석원은 1964년생이므로 1968~1970년에, 한석만은 1970년생이므로 1974~1976년 사이에 다녔을 것이다.] 이후에도 병설유치원들이 생겨남으로써 제주시의 공립유치원 수는 2019년 현재 57곳이 되었다. 신제주 지역[* 제주시 [[노형동]]과 [[연동]]으로 이루어진 시가지. 일도동, 이도동, 삼도동 등은 구제주이다.] 역시 유치원이 늦게 들어온 편이다. 그나마 [[분당신도시]]보다는 빠른 편. * 옛 [[북제주군]] 지역: 1979년 한림초등학교 [[병설유치원]]. 첫 입학생은 [[1973년]]~[[1975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age(1973-12-31)]~[age(1973-01-01)]세이다. * [[신제주]] 지역: 1982년 연동유치원. 첫 입학생은 [[1976년]]~[[1978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age(1976-12-31)]~[age(1976-01-01)]세이다. 지리적인 이유로 [[태풍]]에 의한 휴원이 상대적으로 잦다. 사립유치원은 17곳(시내 15곳, 한림읍 2곳) 있다. 또한 제주도에 [[중국인]]과 수도권에서 이주한 사람들이 늘면서 제주시 유치원에 중국인 원아나, 수도권의 유치원을 다니다가 제주로 이사 오면서 중간에 들어온 원아가 있는 경우도 있을 정도이다. 1960년대 20만 5,210명이던 인구가 2021년 49만 2,466명으로 늘면서[* 옛 제주시 지역은 1960년대 8만 7,369명에서 2021년 38만 973명으로 엄청나게 늘었으나 옛 북제주군 지역은 11만 7,841명에서 11만 1,493명으로 감소해 시내 집중도는 42.6%에서 77.4%로 높아졌다. 제주시 읍면동별 인구는 시내 38만 973명, 애월읍 3만 6,913명, 조천읍 2만 5,339명, 한림읍 2만 1,249명, 구좌읍 1만 5,546명, 한경면 9,029명, 우도면 1,740명, 추자면 1,687명으로, 추자면 인구는 [[노형동]] 인구의 31분의 1 수준이다. 거의 [[서울특별시|서울]] 도심의 소규모 법정동 인구 수준인 셈.], 유치원도 같이 늘었다. 과거에는 원생과 교사들이 대부분 [[제주어]]를 사용했으나, 표준어 보급과 외지인의 지속적인 유입으로 제주어 억양은 많이 희석되었다. 오죽하면 스펀지에서 ‘사투리를 사용하는 아이들도 소꿉놀이를 할 때는 표준어를 사용한다’는 문제도 냈을 정도. 현재 제주시의 유치원에서는 교사들은 주로 [[대한민국 표준어|표준어]]를 쓰고, 원생들은 제주어가 섞인 표준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지만 드물게 제주어를 사용하는 원생이 보인다.[* 제주어가 섞인 표준어를 쓰는 경우는 대부분 몇몇 단어 정도만 제주어 단어를 쓴다. 제주도가 고향인 노년층 중 유치원을 다닌 사람들은 원생과 교사가 모두 외국어 수준으로 심한 제주어를 사용했고 세대가 지나면서 그 강도가 점점 약해졌다.] 다만, 중앙유치원을 다녔다는 어르신들은 거의 외국어 수준의 제주어를 사용했다. 이런 사람들은 거의 80대를 넘은 사람들이다. 이런 이유로 이들은 젊은 시절에 다른 지역 사람과 대화하다가 사투리가 심해 말이 통하지 않으면 [[일본어]]로 대화하기도 했다고 한다. 제주도의 성씨 분포 특성상 제주시의 유치원에서는 [[박씨]], [[최씨]]보다 [[고씨]][* 전국 고씨 인구가 47만 1,396명인데 그 중 3만 3,539명이 제주시, 8,396명이 서귀포시에 살고 있었다. 어느 정도냐면 제주도 상위 성씨 3개가 ‘김이고’, 5대 성씨는 ‘김이고강박’, 10대 성씨가 ‘김이고강박양오정문현’일 정도. (게다가 제주도에서 최씨, 조씨, 윤씨, 장씨 인구는 10위권 밖이다.) 이는 고씨가 사실상 [[제주 고씨]] 단본인 영향이 크다.]들을 더 보기 쉽다. 실제 제주도에서 유치원을 다닌 사람 중에는 자신이 유치원을 다니는 동안 '''자신의 담임교사가 모두 고씨였다'''는 말을 할 정도이다. 고씨 외에도 [[강씨]][* 여기서 말하는 강씨는 한자가 康이다. 전국 인구가 9만 1,265명인데 그 중 제주시에 1만 793명, 서귀포시에 7,554명이 살아 康씨 9명 중 1명은 제주도민일 정도. 심지어 제주도에서는 康씨는 정씨, 문씨, 송씨, 한씨, 홍씨, 최씨, 윤씨, 조씨, 장씨, 황씨보다 많다.], [[변씨]][* 이 변씨는 한자가 '성 변'인 변씨이다. 6만 633명 중 1,853명이 제주시에 살고 있었다.], [[부씨]][* 전국 부씨 인구가 1만 596명인데 그 중 4,574명이 제주시, 561명이 서귀포시에 살아 부씨 둘 중에 하나는 제주도민일 정도. 이는 부씨가 사실상 제주 부씨 단본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제주도에서 부씨 인구는 권씨보다도 많다.], [[좌씨]][* 전국 좌씨 인구가 3,378명인데 그 중 1,803명이 제주시, 145명이 서귀포시에 살아 좌씨 둘 중에 하나는 제주도민일 정도. 이는 사실상 좌씨가 제주 좌씨 하나뿐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배씨, 성씨, 채씨, 차씨보다도 많다.], [[현씨]][* 전국 현씨 인구가 8만 8,824명인데, 그 중 제주시에 8,197명, 서귀포시에 5,362명이 살아 현씨 8명 중 1명이 제주도에 살고 있을 정도. 물론 현씨 자체도 남한보다 북한에 더 많이 산다. [[러시아식 유머|제주도에서는 현씨가 한씨, 최씨, 윤씨보다 많이 사는 셈]].] 성을 가진 원생들이 상대적으로 많다고 한다. 실제 제주도 상위 10개 성씨는 김, 이, 고, 강(姜), 박, 양, 오, 문, 정, 강(康)씨인 셈. 심지어 제주도의 일부 유치원은 고씨가 김씨보다 많은 반도 있다. 축구선수 [[지동원]]이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지동원은 [[1991년]] [[5월 28일]]생([age(1991-05-28)]세)이라 1994~1997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이들은 유치원 시절 [[에버랜드]]에서 [[판다]] 밍밍(明明)과 리리(莉莉)를 볼 수 있었던 것은 물론 두 자리 번호판을 처음으로 보고, 악명 높은 [[IMF 금융위기]] 사태를 유치원 시기 말미에 겪은 셈. 당시 추자도는 제주도 북제주군 추자면이었다. 제주 시내에 사립유치원이 몰려 있고 추자면에 사립유치원이 없는 정황상 추자면 유일의 유치원인 추자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을 다녔거나 시내로 이사 와서 다녔을 것이다. 그 시절이면 [[9급 공개경쟁채용시험|9급 공무원 시험]]은 [[고졸]]들이 주로 치는 시험이라며 대졸자들 사이에서는 무시를 받았고 (이렇게 9급 공무원 시험이 대졸자들 사이에서 무시받은 데는 행정학 등 전문과목이 없고 모두 고교 과목이었던 점도 있다.), [[이하영(강사)|이하영]], [[이지영(강사)|이지영]], [[이다지]], [[고아름]] 등이 아직 유치원생이거나 초등학생이었고 1960~70년대생들이 대학생이었던 시절인데 (이 때문에 1976년생 박봄, 조은정 등은 물론 1971년생 이기상, 1970년생 전한길이 1991년생들이 유치원을 다니던 시절에 대학생이었다.) 이 공식대로라면 지동원은 무려 '''[[이기상]], [[전한길]]의 대학 시절에 유치원생이었던''' 셈이다.] 제주도 최초의 금메달리스트인 야구선수 [[강민호]] 역시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강민호는 [[1985년]] [[8월 18일]]생([age(1985-08-18)]세)이라 1989~1991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이들이 유치원을 다닐 적에는 북제주군, 남제주군이 있는 건 물론 1960년대생들이 아직 대학교에 남아 있던 시절이었으며, 강민호는 [[이다지]] (1985년 3월 11일생)와 같은 시기에 유치원 생활을 했다. 그래서 1987년 7월 19일생인 [[고아름]]은 1990년부터 1993년 사이에 유치원생이었으므로 강민호가 유치원 3년차일 때 유치원 입학 대상이 됐다고 하며, 고아름과 강민호는 유치원생 시기가 1년만 겹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